다우닝가 10번지의 진짜 주인 고양이 래리, 총리보다 오래 살아남은 수석 쥐 담당관의 역사와 권력의 역설
2026-05-16
어느 월요일 아침, 다우닝 스트리트
카메라 플래시가 터집니다. 2016년 6월 24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아침.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총리 관저 앞에서 사임을 발표합니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마이크가 즐비하고, 전 세계의 눈이 런던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를 향합니다.
그런데 그 역사적 순간, 누군가가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총리 관저 현관 계단 위에서, 턱시도 무늬의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정치적 순간 중 하나. 그러나 고양이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주 약간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총리가 바뀌는군. 몇 번째더라."
그 고양이의 이름은 래리(Larry)입니다. 공식 직함은 수석 쥐 담당관(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 그리고 그는 캐머런이 떠난 후에도, 테리사 메이가 들어왔다가 나간 후에도, 보리스 존슨이 요란하게 왔다가 쫓겨난 후에도, 리즈 트러스가 45일 만에 사임한 후에도 — 여전히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총리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나 래리는 남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래리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훨씬 더 오래전으로,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 처음 고양이가 등장한 것은 1500년대로 추정됩니다. 헨리 8세 시대의 기록에 왕실 창고 쥐 관리를 위해 고양이를 고용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고양이에게는 실제로 급여가 지급되었습니다. 1주일에 1페니.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 안 되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급여였습니다.
그러다 이 전통이 현대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1929년, 래리의 선배 격인 고양이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다우닝 스트리트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름은 피터(Peter). 첫 번째 피터입니다. 피터 1세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는 램지 맥도날드 총리 시절부터 다우닝 스트리트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집니다. 피터 1세는 임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쥐를 잡지 않았습니다. 공식 임무인 쥐잡이에 완전히 무관심했습니다. 결국 한 언론인이 이 사실을 폭로했고, 피터 1세는 은퇴를 강요받았습니다. 쥐잡이를 거부한 최초의 관저 고양이. 직무 유기로 해고된 공무원 고양이. 영국 정부 역사에서 가장 황당한 사건 중 하나일 것입니다.
피터들의 시대 — 혼돈과 드라마
피터 1세 이후, 다우닝 스트리트는 피터라는 이름의 고양이들을 줄줄이 들였습니다. 피터 2세는 좀 더 성실했습니다. 처칠, 애틀리, 이든 등 여러 총리를 섬겼습니다. 18년이라는 긴 재임 기간을 자랑했는데, 그 기간 동안 총리가 네 번 바뀌었습니다. 피터 2세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언론이 다뤘고, 은퇴 후에는 관저 직원 중 한 명의 집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습니다.
피터 3세는 좀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쥐는 잘 잡았습니다. 그런데 방문객을 물었습니다. 총리 관저를 찾은 외국 외교관을 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국제적 외교 결례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죠. 피터 3세도 결국 은퇴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험프리(Humphrey)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재임하며 대처, 메이저, 블레어 총리를 섬겼습니다. 험프리는 꽤 유명한 관저 고양이였는데, 1997년 블레어 총리 취임과 함께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공식 발표는 "건강 문제로 은퇴"였지만, 일부에서는 블레어의 아내 체리 블레어가 고양이를 싫어해서 쫓아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험프리의 은퇴 이후 몇 달간, 영국 언론은 진짜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험프리 생존 확인에 나섰습니다. 결국 정부가 험프리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 사진을 공개해야 했습니다. 한 고양이의 안녕이 외교 문제에 준하는 사안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래리가 왔습니다
2011년 2월, 런던 배터시 고양이 보호소에서 한 고양이가 총리 관저로 이송되었습니다. 4살짜리 수컷 얼룩 고양이. 이름은 래리(Larry). 성은 없습니다. 굳이 붙이자면 래리 오브 다우닝 스트리트(Larry of Downing Street)쯤 될까요?
배터시 보호소에 오기 전 래리의 삶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길고양이였다는 것, 2011년 초 보호소에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에서 그 작은 고양이가 캐머런 총리 관저의 후보로 낙점되었다는 것.
래리의 공식 임명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래리는 그의 뛰어난 쥐 사냥 능력, 온화한 성품, 그리고 언론에 친숙한 자세를 인정받아 내각 사무처 수석 쥐 담당관으로 임명된다."
언론에 친숙한 자세. 이것이 공식 임명 자격 요건에 포함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자리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쥐만 잡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도 잘 버텨야 한다는 것. 래리는 처음부터 스타였습니다.
래리의 스캔들 — 쥐를 못 잡는 수석 쥐 담당관
임명 초기부터 래리는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쥐를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2011년, 한 언론인이 다우닝 스트리트 근처에서 쥐가 뛰어다니는 장면을 포착해 보도했습니다. 래리가 임명된 지 몇 달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영국 언론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수석 쥐 담당관이 쥐를 못 잡는다"는 헤드라인이 쏟아졌습니다.
래리의 변호인인 총리 관저 공식 대변인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공식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영국 정부가 고양이 한 마리의 직무 수행 능력에 대해 공식 성명을 낸 것입니다. 이보다 영국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요?
성명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래리는 적응 기간 중이다. 쥐잡이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지켜봐 달라."
하지만 의혹은 계속되었습니다. 래리가 쥐를 잡는 모습은 좀처럼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카메라 앞에서 여유롭게 앉아 있거나, 방문객들에게 다가가 쓰다듬어 달라고 요청하거나, 총리 관저 현관 계단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이 주로 포착되었습니다.
영국 언론은 래리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였습니다. "가장 비싼 쥐잡이", "직무 유기의 아이콘", 그리고 가장 애정 어린 표현으로는 "다우닝 스트리트의 진짜 주인".
래리 본인은 이 모든 비판에 무관심했습니다. 그것이 더욱 고양이답습니다.
총리는 가도 래리는 남는다 — 권력의 역설
래리가 다우닝 스트리트에 온 이후, 영국 총리가 몇 명이나 바뀌었는지 세어보겠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2010~2016.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충격받고 사임. 래리가 임명된 총리. 래리를 데려왔지만, 래리는 캐머런이 떠난 후에도 남았습니다.
테리사 메이: 2016~2019. 브렉시트 협상의 미궁 속에서 결국 사임. 메이 총리 시절 래리는 총리 관저 고양이 팔라메르(Palmerston, 외교부 고양이)와 사이가 나빠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두 고양이의 싸움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습니다.
보리스 존슨: 2019~2022. 파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 존슨 시절 래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존슨이 관저에서 파티를 열 때 래리도 있었는지가 진지하게 토론되기도 했습니다.
리즈 트러스: 2022년 9~10월. 재임 45일로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 트러스가 취임하고 사임하는 동안, 래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리시 수낙: 2022~2024. 그리고 현 영국 총리인 키어 스타머 이후로도 래리는 계속 그 자리에 있습니다.
래리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역사적 사임 발표들, 심야의 위기, 브렉시트의 혼돈, 팬데믹의 공포, 파티게이트 스캔들 — 래리는 그 모든 것의 목격자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래리는 다우닝 스트리트 계단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래리를 단순한 관저 고양이가 아닌, 하나의 정치적 아이콘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래리에게는 SNS 계정이 있다
현대 정치에서 래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소셜 미디어입니다. 래리는 공식 트위터(현 X) 계정 @Number10cat(https://x.com/Number10cat)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팔로워(2026년 5월 16일 기준)는 884K. 래리의 트위터 계정에서는 관저 내부의 일상을 고양이 시점에서 전합니다. 총리의 회의를 방해한 이야기, 방문객을 무시한 이야기, 낮잠을 자다가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줄 몰랐다는 이야기들을 말이죠.
물론 실제로 래리가 트위터를 운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저 직원 중 누군가가 운영합니다. 하지만 그 문체는 철저하게 래리의 시점으로 쓰입니다. 오만하고, 무관심하고, 가끔 날카로운 정치적 논평이 담긴 트윗을 말이죠.
가장 유명한 트윗 중 하나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에서 사임하던 날 올라온 것입니다. "또 이사 오나. 또 이사 가나. 나는 그냥 여기 있을 건데."
이 래리의 트윗에는 수십만 개의 리트윗이 달렸습니다. 영국 정치의 혼란 속에서, 래리의 SNS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총리가 몇 번을 바뀌어도 래리는 남는다는 것. 그 불변의 사실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작은 위안이 된 것입니다.
래리만이 아니다 — 영국 정부의 고양이들
영국 정부의 고양이 사랑은 다우닝 스트리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외교부(Foreign Office)에도 공식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팔라메르스턴(Palmerston) —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외교관 파머스턴 경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팔라메르스턴은 2020년까지 외교부를 지켰습니다. 팬데믹으로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하자 홀로 남겨진 팔라메르스턴을 위해 직원이 출근해야 한다는 논의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재무부(HM Treasury)에는 프레야(Freya)라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프레야는 원래 캐머런 총리의 반려묘였다가 재무부로 이적했습니다. 재무부 고양이라는 것이 이미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영국의 중앙정보국(GCHQ)에도 고양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이 고양이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정보기관 고양이는 당연히 기밀이어야 하니까요.
이처럼 영국 정부 기관들이 공식 고양이를 두는 전통은 꽤 광범위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유머나 PR 전략이 아닙니다. 수백 년에 걸쳐 쌓인, 고양이와 영국 관료제의 기묘하고도 진지한 동거입니다.
래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래리를 바라보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총리들은 왔다 갑니다. 정책은 바뀝니다. 스캔들이 터지고, 사임이 발표되고, 선거가 치러지고, 새 얼굴이 그 유명한 검은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러나 래리는 여전히 남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고양이의 장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래리는 다우닝 스트리트라는 공간 자체가 어떤 개인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총리라는 자리는 거대하지만 일시적인 것이고, 고양이는 그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를 지킵니다.
영국 사람들이 래리를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민주주의가 시험을 받아도, 국가적 위기가 닥쳐도 다우닝 스트리트 계단 위에서 래리는 무관심한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그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위안이 됩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어떤 총리가 들어와도 쫓겨나지 않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권력의 중심에서 권력에 완전히 무관심한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는 것.
래리는 알고 있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는지? 아마 모를 것입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래리가 래리인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