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여섯 발가락 고양이 스노볼 — 키웨스트 박물관 50마리 폴리댁틸 후손과 문학의 깊은 인연
2026-05-28
폴리댁틸 고양이의 유전학 | 헤밍웨이 박물관 50마리의 현재 | 문학사를 바꾼 고양이들
플로리다 키웨스트, 화이트헤드 스트리트 907번지, 관광객이 헤밍웨이 박물관 입장권을 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챕니다.
안내 책자에는 헤밍웨이의 생애와 작품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벽에는 《노인과 바다》 초판본이 걸려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가 실제로 쓰던 타자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타자기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쫓아내야 할 것 같은데, 직원들이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서재 소파에도 고양이, 침대 위에도 고양이, 정원에도 고양이. 어디를 봐도 고양이입니다. 대략 50마리, 그리고 이 고양이들의 발을 자세히 보면 신기하게도 발가락이 여섯 개입니다.
스노볼이라는 이름의 선물
1930년대 초,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키웨스트(Key West)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한 미국 문단의 대스타였습니다.
두 번째 아내 폴린 파이퍼(Pauline Pfeiffer)와 함께 스페인 식 저택을 구입해 키웨스트에 정착했고, 쿠바 해협에서의 낚시와 글쓰기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선원 출신의 친구 캡틴 스탠리 디엑스트라(Captain Stanley Dexter)가 흰 고양이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이름은 스노볼(Snowball).
그런데 스노볼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앞발에 발가락이 여섯 개였습니다. 일반 고양이는 앞발에 다섯 개, 뒷발에 네 개의 발가락을 가집니다. 스노볼은 앞발에 하나씩 더 있었습니다.
디엑스트라는 선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 사이에는 오래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섯 발가락 고양이는 배 위에서 균형을 더 잘 잡고, 쥐를 더 잘 잡으며, 무엇보다 행운을 가져온다는 것. 폭풍을 피하게 해준다는 믿음 말이죠.
헤밍웨이는 스노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스노볼은 키웨스트 저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헤밍웨이의 서재에서, 타자기 소리가 울리는 공간에서, 《오후의 죽음》이 쓰이고 《킬리만자로의 눈》이 탄생하던 그 방에서 스노볼은 노닐었습니다.
여섯 발가락의 과학 — 이것은 결함이 아닙니다
스노볼이 특별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잠깐 유전학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섯 발가락 고양이의 의학적 명칭은 폴리댁틸(Polydactyl)입니다. 그리스어로 폴리(poly)는 "많은", 댁틸(dactyl)은 "손가락"을 뜻합니다. 이 형질은 단일 우성 유전자에 의해 발현됩니다. 부모 중 한쪽이 폴리댁틸이면 새끼의 약 50%가 같은 형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결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폴리댁틸 고양이는 일반 고양이와 완전히 동일한 수명과 건강을 가집니다. 오히려 발이 넓어 균형감이 더 좋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넓적한 폴리댁틸 발은 "야구 글러브 발(mitten paw)"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기록상 가장 많은 발가락을 가진 고양이는 캐나다의 제이크(Jake)로, 각 발에 일곱 개씩 총 스물여덟 개의 발가락을 가져 기네스 세계 기록을 보유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이 이 고양이를 행운의 존재로 여긴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폭풍우치는 갑판 위에서 여섯 발가락의 넓은 발은 확실히 더 잘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미신만이 아니었습니다. 관찰에서 비롯된 믿음이었습니다.
헤밍웨이와 고양이 — 서른 마리와 함께 살았던 작가
헤밍웨이는 고양이를 사랑했습니다. 진심으로, 깊이 말이죠. 키웨스트 시절 그는 최대 서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당시 이웃들의 회고록과 방문객들의 기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실입니다. 그의 저택은 사실상 고양이 공동체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정치인,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의 이름들. 이 전통은 오늘날 헤밍웨이 박물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박물관의 고양이들 중에는 어니(Ernie, 헤밍웨이 자신의 별명), 베이브(Babe, 베이브 루스), 마크 트웨인(Mark Twain), 지미 버펫(Jimmy Buffett) 같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헤밍웨이에게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고양이는 완전한 솔직함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고양이는 숨기지 않는다."
헤밍웨이 문학의 핵심은 "빙산 이론"입니다.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은 전체의 8분의 1이고, 나머지 8분의 7은 수면 아래에 있다는 것.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감정을 담는 글쓰기. 그는 이것을 고양이에서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존재 말입니다.
타자기 옆의 고양이 — 글쓰기와 고양이의 관계
헤밍웨이의 서재 사진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타자기 옆에, 책상 위에, 원고 더미 위에. 그것이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고양이가 곁에 있을 때 글이 더 잘 써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현대 심리학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고양이의 골골거리는 소리(purring)는 25~50Hz의 진동을 발생시킵니다. 이 주파수 범위는 인간의 뇌에서 알파파 상태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파파는 이완과 집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창의적 사고의 최적 상태입니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이 실제로 창의적 작업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헤밍웨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속 수많은 작가들이 고양이와 함께 글을 썼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고양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고양이 카토리나가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작품의 상당 부분을 썼습니다.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 T.S. 엘리엇, 레이먼드 챈들러, 스티븐 킹 — 이들 모두 열렬한 고양이 애호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고양이는 작가에게 필요한 두 가지를 동시에 줍니다. 고독과 동반. 고양이는 말을 걸지 않습니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방에 혼자가 아니게 만듭니다. 긴 글쓰기의 시간 동안, 그 침묵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죠.
스노볼의 유산 — 90년을 이어온 유전자
스노볼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도 196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키웨스트를 떠난 지 오랜 후였지만, 그 저택에는 스노볼의 후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택이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고양이들은 남았습니다. 박물관 측은 이 고양이들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성껏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양이들이 헤밍웨이의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헤밍웨이 박물관에는 약 50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폴리댁틸 형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일반 발가락을 가진 고양이들이지만, 스노볼의 혈통에서 발가락 유전자를 받지 않은 개체들입니다.
모든 고양이는 수의사의 정기 검진을 받고, 중성화 수술을 받고, 건강 상태가 관리됩니다. 박물관 직원들 중에는 "고양이 관리자"가 있어 매일 이들을 돌봅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들은 박물관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헤밍웨이의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그의 타자기 앞에 앉고, 수영장 옆에서 낮잠을 즐깁니다. 관람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도 태연합니다. 90년 전 스노볼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이 자신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허리케인도 이기지 못한 것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가 미국 남부를 강타했습니다. 카트리나의 경로 근처였던 키웨스트에도 강한 바람과 비가 몰아쳤습니다. 헤밍웨이 박물관 측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대피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직원들은 고양이들을 데리고 대피할 것인지, 아니면 박물관에 남겨둘 것인지 논의했습니다. 50마리의 고양이를 이동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정은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도 일부가 남아 고양이들을 지켰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동안, 박물관 건물 안에서 고양이들과 직원들이 함께 폭풍을 버텼습니다.
스노볼이 선원 디엑스트라에게서 헤밍웨이에게로 온 이유가, 선원들이 고양이를 폭풍에서의 행운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이 고양이들의 후손들은 실제로 허리케인을 버텨냈습니다. 카트리나 이후 박물관은 정상 운영을 재개했고, 고양이들은 무사했습니다.
연방 정부와의 싸움 — 고양이들을 지키기 위해
헤밍웨이 박물관 고양이들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관료주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2003년, 미국 농무부(USDA)가 헤밍웨이 박물관에 통보했습니다. 박물관이 고양이들을 "전시"하고 있으므로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에 따라 동물원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관련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물관 측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고양이들은 전시 동물이 아닙니다. 이 집에서 태어났고, 이 집에서 살고 있고, 이 집이 그들의 집입니다. 헤밍웨이의 고양이들을 동물원 동물과 같은 기준으로 관리하라는 것은 이 고양이들의 본질을 모르는 것입니다.
법적 다툼은 무려 10년 이상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청문회가 열렸고, 항소가 반복되었습니다. 2013년, 연방 항소법원은 농무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박물관은 결국 일부 규정을 따르기로 합의했습니다. 고양이들을 위한 더 나은 의료 시설과 울타리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들은 박물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헤밍웨이의 침대에서 자고, 타자기 옆에 앉습니다. 연방 정부도, 법원도, 그것만큼은 막지 못했습니다.
키웨스트를 넘어 — 폴리댁틸의 지리학
헤밍웨이 박물관 고양이들이 유명해지면서, 폴리댁틸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폴리댁틸 고양이의 분포는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 특히 보스턴과 그 주변, 그리고 영국 웨일스 지방에 특히 많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연구자들은 이것이 선원들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고 봅니다. 폴리댁틸 고양이를 행운으로 여긴 선원들이 배에 이 고양이들을 태우고 항해하면서, 기항지마다 이 유전자를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보스턴은 대서양 무역의 주요 항구였고, 웨일스는 영국 서부 해안의 항구 도시들이 밀집한 곳입니다. 키웨스트 역시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고양이들이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전자를 퍼뜨렸습니다. 스노볼을 헤밍웨이에게 선물한 디엑스트라 선장도 그 흐름의 일부였습니다. 행운을 싣고 항해하는 고양이들의 유전자가, 항구에서 항구로 전해지며 오늘날의 분포를 만들었습니다.
타자기는 멈췄지만 고양이는 남았다
헤밍웨이가 이 집을 떠난 것은 1939년이었습니다. 세 번째 아내 마사 겔혼(Martha Gellhorn)을 만나면서 쿠바로, 다시 아이다호로 떠났습니다. 타자기를 챙겼습니다. 낚싯대를 챙겼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두고 갔습니다. 이것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고양이들은 이미 그 집의 것이었습니다. 헤밍웨이가 키웨스트의 것이었던 것처럼, 고양이들도 키웨스트의 것이었습니다. 헤밍웨이가 이동하는 존재였다면, 고양이들은 머무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쿠바로, 파리로, 아프리카로, 아이다호로 이동했습니다. 만년에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고, 1961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타자기는 박물관의 유리 케이스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소설들은 세계 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노볼의 후손들은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키웨스트의 오후 햇살 아래 여섯 발가락 고양이 한 마리가 헤밍웨이의 타자기 앞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타자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90년 전 스노볼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