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구르 반: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가 고양이에게 쓴 시 — 켈스의 서와 중세 필사본 고양이의 역사

팡구르 반: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가 고양이에게 쓴 시 — 켈스의 서와 중세 필사본 고양이의 역사

2026-05-2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양이 시 | 켈트 수도원 고양이의 역사 | 중세 필사본 여백의 낙서들

어떤 이야기는 양피지에서 시작됩니다. 9세기 어느 밤, 오스트리아 라이헨아우 수도원의 한 아일랜드 수도사가 양피지에 글을 씁니다. 그런데 그가 쓰고 있는 것은 성경도, 신학 논문도 아닙니다. 아일랜드어로 쓰인 8연의 짧은 시. 제목은 《팡구르 반(Pangur Bán)》.팡구르 반은 그의 고양이 이름입니다.

팡구르 반 — 1200년을 건너온 시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와 팡구르 반, 우리 각자의 일을 합니다. 그는 쥐를 사냥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나는 날카로운 지식을 갈고닦습니다." 8개의 연 내내, 수도사는 자신과 고양이를 나란히 놓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쫓는 것처럼, 수도사는 단어의 의미를 쫓습니다. 고양이가 사냥에 성공해 기뻐하는 것처럼, 수도사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 기뻐합니다. 둘 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밤을 보냅니다. 둘 다 방해받지 않고 말이죠.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는 자신의 기술로 기뻐하고, 나는 내 것으로 기뻐합니다. 팡구르 반의 사냥이 나쁘지 않고, 나의 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가 쓰인 것은 서기 800년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입니다. 현재 이 원고는 오스트리아 상트 갈렌(St. Gallen)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시는 세계 문학사에서 고양이에 대해 쓰인 가장 오래된 시 중 하나로 인정받습니다. 수도사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팡구르 반이라는 고양이 이름만 남았습니다. 아일랜드어로 팡구르는 "표백제" 혹은 "천을 표백하는 사람"을 뜻하고, 반은 "흰"을 뜻합니다. 흰 고양이. 흰 팡구르. 1200년 전 이름 모를 수도사와 그의 흰 고양이.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아일랜드 역사와, 중세 수도원 문화와, 그리고 지식의 보존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사업과 연결되는지 —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일랜드가 유럽의 지식을 구한 시절

6세기에서 9세기 사이, 유럽 대륙은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게르만 민족들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도서관이 불탔습니다. 학교가 사라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이 담긴 문서들이 전쟁 속에 파괴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의 섬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수도사들은 필사했습니다. 아일오나(Iona), 클론맥노이즈(Clonmacnoise), 켈스(Kells), 린디스판(Lindisfarne) — 이 수도원들에서 수도사들은 밤을 새워 양피지에 글자를 새겼습니다. 성경을, 고전 문학을, 역사 기록을, 신학 논문을. 대륙에서 사라지고 있던 지식들이 아일랜드 수도원의 양피지 위에 살아남았습니다. 아일랜드 역사학자 토마스 카힐은 그의 책 《아일랜드인들은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How the Irish Saved Civilization)》에서 이 시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유럽이 불타는 동안,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지식의 등불을 지켰다고, 그리고 그 등불 곁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필사실의 고양이 — 단순한 쥐잡이가 아니었다

왜 수도원에 고양이가 필요했을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양피지는 동물 가죽으로 만듭니다. 잉크는 오크 껍질이나 금속으로 만듭니다. 둘 다 쥐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수도원 도서관과 필사실에 쥐가 들끓으면, 수백 시간 공들여 만든 필사본이 단 하룻밤에 망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그 쥐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의 기록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세 아일랜드 수도원의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고양이의 역할이 쥐잡이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고양이와 함께 일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같은 공간에서 말이죠. 클론맥노이즈 수도원의 기록에는 특정 고양이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고양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익명의 쥐잡이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사는 동료였습니다. 또한 고양이는 필사실의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수도사들은 하루에도 여러 시간씩 허리를 굽히고 앉아 가는 붓으로 글자를 새겼습니다.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동시에 극도로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고양이가 발치에서 골골거리거나, 무릎 위에 올라와 앉으면 — 그것은 그 긴 침묵의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의 온기였습니다.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의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겨울밤이 길다. 잉크는 얼고, 손가락은 굳는다. 하지만 고양이가 옆에 있으면 작업이 덜 외롭다."

여백의 낙서들 — 양피지에 새겨진 수도사의 일상

중세 필사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는 여백의 낙서들입니다. 수도사들은 공식적인 텍스트를 필사하다가, 양피지의 여백에 혼잣말을 남기곤 했습니다. 불평, 농담, 날씨에 대한 언급,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아일랜드 필사본 여백에서 발견된 낙서들 중 몇 가지가 현재까지 전해집니다. "고양이가 잉크병을 엎었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 어느 수도사가 필사 작업 중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입니다. 글자 옆에 작은 고양이 발자국 모양의 얼룩이 실제로 남아 있는 필사본도 있습니다. 1200년 전, 고양이가 잉크를 밟고 걸어간 흔적. "팡구르는 오늘 큰 쥐를 잡았다. 신께서 우리 둘 모두를 기뻐하신다." - 누군가의 여백 메모. 자신의 필사 작업과 고양이의 사냥을 같은 선상에 놓은 이 짧은 메모에서, 앞서 살펴본 팡구르 반 시의 정서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 고양이는 오늘 내가 베끼고 있는 예레미야서를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만큼은." - 자조적인 유머가 담긴 메모입니다. 수도사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필사하면서, 곁에 앉은 고양이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일까요? 이 낙서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귀엽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중세 수도사들이 고양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1차 사료입니다. 두려워하거나 기피했던 것이 아니라, 동료로, 때로는 친구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켈스의 서 — 가장 아름다운 필사본과 고양이

아일랜드 필사본의 최정점은 《켈스의 서(Book of Kells)》입니다. 서기 8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라틴어 성경 필사본은, 현존하는 중세 필사본 중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아일랜드의 국보입니다. 그런데 이 방대한 필사본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고양이가 있습니다. 34r 페이지의 유명한 문자 장식 속에, 두 마리의 고양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쥐를 잡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쥐들이 성체를 물고 있는 모습도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성스러운 것을 위협하는 존재(쥐)와 그것을 지키는 존재(고양이)의 관계를 시각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린 수도사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성경 필사본의 가장 화려한 장식 페이지에 고양이를 그려 넣은 그 선택은, 고양이를 단순히 유용한 동물로 보는 사람의 선택이 아닙니다. 고양이가 이 공간의 진정한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아일랜드 법이 고양이를 보호한 방식

중세 아일랜드에는 브레혼 법(Brehon Law)이라는 독자적인 법체계가 있었습니다. 게일족의 전통법으로, 수백 년간 아일랜드를 규율했습니다. 브레혼 법에는 고양이에 관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고양이의 가치는 그 능력에 따라 규정되었습니다. 단순히 고양이인 것의 가치, 쥐를 잡는 고양이의 가치, 좋은 어미인 고양이의 가치, 그리고 — 수도원을 지키는 고양이의 가치. 이 순서로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누군가 고양이를 죽이거나 훔치면 죄의 무게는 그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 쥐를 잡았느냐로 측정되었습니다. 쥐를 한 마리도 잡은 기록이 없는 고양이를 훔친 것보다, 수도원의 필사본들을 지킨 고양이를 죽인 것이 훨씬 무거운 범죄였습니다. 법이 고양이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산 보호 차원이 아닙니다. 고양이의 역할을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로 본 것입니다. 필사본을 지킨 고양이는, 그 필사본이 담은 지식을 지킨 것이고, 그 지식은 공동체 전체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고양이의 하루

상상해보겠습니다. 9세기 클론맥노이즈 수도원, 어느 겨울 아침 동이 트기 전, 수도사들이 새벽 기도를 위해 일어납니다. 돌로 만든 수도원은 차갑습니다. 아일랜드의 겨울 새벽은 혹독합니다. 수도사들이 예배당으로 향하는 동안, 필사실 한 구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켭니다. 밤사이 고양이는 일했습니다. 필사실 창고에서,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지하 저장고에서. 쥐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양피지와 잉크를 지켰습니다. 아침 기도가 끝나면 수도사들이 필사실로 돌아옵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전날 이어오던 작업을 계속합니다. 고양이는 따뜻한 양피지 더미 위에, 혹은 수도사의 발치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잡니다. 한 수도사가 어려운 라틴어 구절 앞에서 멈춥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여백에 작게 씁니다. "이 구절은 우리 고양이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옆에서 고양이가 꼬리를 흔듭니다.

팡구르 반이 남긴 것

《팡구르 반》 시는 오늘날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전 시 중 하나입니다. 수십 가지 영어 번역본이 있고, 음악으로 만들어졌고, 애니메이션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개봉한 아일랜드 애니메이션 《켈스의 비밀(The Secret of Kells)》에서는 이 시가 주요 모티프로 사용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 수도사 소년이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도 팡구르 반입니다. 1200년 전 이름 모를 수도사가 양피지 여백에 흰 고양이를 위해 쓴 시가, 세기를 넘어 살아남아 21세기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다시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단순히 귀엽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요.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팡구르 반 시에는 무언가 보편적인 것이 있습니다.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하는 두 존재의 이야기. 서로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공간을 나누는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기쁨의 이야기. 그것이 쥐를 잡는 것이든,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든 말이죠. 수도사는 신을 섬기기 위해 필사했고, 고양이는 본능을 따라 사냥했습니다. 목적은 달랐지만, 그 방에서 그 밤에 두 존재는 완벽하게 평화로웠습니다. 그 평화를 기록으로 남긴 무명의 수도사. 그 기록이 1200년을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그 평화가 그만큼 희귀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아일랜드에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는 켈스의 서가 있습니다. 그 도서관의 유명한 롱 룸(Long Room)은 21만 권의 고서를 소장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의 안팎에는, 때때로 고양이가 있습니다. 공식 도서관 고양이는 아닙니다. 에르미타주처럼 직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도서관 근처에 사는, 이름 모를 고양이들이 이따금 들어옵니다. 학생들이 먹이를 주기도 하고, 직원들이 쓰다듬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고양이들은 1200년 전 팡구르 반의 후예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굳이 후예가 아니어도 됩니다. 고양이와 책과 지식의 공간. 이 세 가지의 조합은 9세기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늘 함께였을 것입니다. 밤에 홀로 남은 도서관에서, 수천 권의 책이 잠든 서가 사이를 걸어다니는 고양이. 그 고양이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름도, 직함도, 월급도 없이, 팡구르 반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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