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15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엔듀런스호의 고양이들 | 섀클턴의 결단 | 극한의 남극에서 고양이가 한 일
1914년 12월 5일, 남조지아 섬의 그리트비켄 항구,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끄는 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의 선박 엔듀런스(Endurance)호가 닻을 올렸습니다. 목적지는 남극. 임무는 인류 최초로 남극 대륙을 도보로 횡단하는 것. 승선 인원 27명, 썰매견 69마리, 그리고 고양이들과 함께 말이죠.
정확히 몇 마리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미세스 칩스(Mrs. Chippy)라는 이름의 고양이였고, 그 외 새끼 고양이들이 함께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미세스 칩스는 이름과 달리 수컷이었습니다. 배의 목수(carpenter) 해리 맥니시(Harry McNish)가 데려왔고, 맥니시의 별명이 "칩스"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들이 함께한 것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생존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엔듀런스의 항해 —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순간
탐험대의 계획은 야심 찼습니다. 웨델해를 통해 남극에 상륙한 뒤, 남극점을 지나 로스해 쪽으로 대륙을 횡단한다. 총 거리 약 2,900km.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출발부터 자연이 거부했습니다. 1915년 1월, 예상보다 훨씬 일찍, 그리고 훨씬 두껍게 남극의 유빙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엔듀런스호는 남극 해안에 닿지도 못한 채 웨델해 한가운데서 유빙에 갇혀버렸습니다. 배를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남극의 겨울은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반대입니다. 해가 뜨지 않습니다. 기온은 영하 30도를 넘나듭니다. 바람은 쉬지 않습니다. 얼음은 살아있는 것처럼 배를 조여왔습니다. 27명의 남자들이 남극의 한가운데 얼어붙은 배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 안에 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미세스 칩스의 남극 생활
미세스 칩스는 엔듀런스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존재였습니다. 탐험대원들의 일기와 편지에는 미세스 칩스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남극학자이자 탐험대의 지질학자였던 제임스 워디(James Wordie)는 자신의 일기에 미세스 칩스가 식당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누구의 무릎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탐험대 사진가 프랭크 헐리(Frank Hurley)는 미세스 칩스를 여러 장 사진에 담았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사진들 중에는 미세스 칩스가 갑판 위에 앉아 있는 모습, 대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남극 탐험사의 공식 기록물이 되었고, 미세스 칩스는 그 역사적 기록 속에 영구히 남았습니다.
얼음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배 안에서 고양이의 역할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쥐 잡기라는 실용적 기능도 물론 있었습니다. 오랜 항해를 거치며 배에는 쥐가 생기기 마련이었고, 식량을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신적 안정, 남극의 극야(極夜), 몇 달째 해가 뜨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배가 얼음에 조여드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야 하는 상황에서, 고양이의 존재는 그 어떤 의약품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무릎 위에 올라와 골골거리는 생명. 먹이를 달라고 야옹대는 평범한 소리. 그것이 이 비범한 상황에서 일상의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었습니다.
배가 으스러지다 — 섀클턴의 가장 어려운 결정
1915년 내내 얼음은 엔듀런스호를 조여왔습니다. 10월이 되자 배의 선체가 버티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의 압력이 나무 선체를 으스러뜨렸습니다.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7명의 대원들은 얼음 위로 내려섰습니다. 썰매, 구명보트, 식량, 필수 장비만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가장 가슴 아프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섀클턴은 명령했습니다. 미세스 칩스를 포함한 고양이들과 개 새끼들을 안락사시킬 것.
이 결정은 냉혹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섀클턴의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얼음 위에서의 생존은 모든 개인과 동물에게 최소한의 식량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먹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원들이 고양이를 위해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생존이 먼저였습니다.
목수 맥니시에게 이것은 배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양이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일은 맥니시와 섀클턴 사이에 이미 쌓이고 있던 긴장을 더욱 깊게 했습니다. 맥니시는 나중에 섀클턴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세스 칩스의 죽음은 단순한 동물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탐험이 더 이상 모험이 아니라 생존임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그 이후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존
미세스 칩스가 없는 엔듀런스 탐험대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됩니다. 1915년 11월, 엔듀런스호는 완전히 으스러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27명의 남자들은 유빙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수개월 후 유빙이 녹기 시작하자 세 척의 작은 구명보트에 나눠 타고 엘리펀트 섬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섀클턴은 22명을 섬에 남겨두고,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가장 큰 구명보트 제임스 케어드(James Caird)호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800마일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 섬의 포경 기지. 남극의 겨울 바다, 세상에서 가장 거친 바다를 소형 목선으로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섀클턴은 해냈습니다. 16일 후, 섀클턴 일행은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섬의 반대편에 착륙했고, 아무도 넘은 적 없는 험준한 산을 맨발에 가까운 상태로 넘어야 했습니다. 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펀트 섬에 남겨둔 22명을 구하러 돌아갔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얼음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도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도. 네 번째 시도에서, 출발 후 거의 정확히 2년이 지난 1916년 8월, 섀클턴은 22명 전원을 구해냈습니다. 사망자 제로. 조난된 27명 전원 생존. 인류 탐험 역사에서 이에 비견될 만한 생존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맥니시의 원한 — 고양이와 얽힌 역사의 비틀림
미세스 칩스 이야기에는 역사적으로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리 맥니시는 탐험 내내 섀클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제임스 케어드호를 보강하고 항해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작업을 해내지 못했다면, 섀클턴의 800마일 항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맥니시의 목수 기술이 27명 전원 생존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섀클턴은 귀환 후 극지 메달(Polar Medal) 수여 대상자에서 맥니시를 제외했습니다. 이유는 탐험 도중 섀클턴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맥니시는 이 결정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여생을 뉴질랜드에서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1930년 그가 사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역사적으로 당연히 받았어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뉴질랜드 남극협회는 맥니시의 묘비 옆에 미세스 칩스의 실물 크기 청동상을 세웠습니다. 탐험에서 그가 한 역할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고양이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죠.
맥니시의 무덤 옆에 선 미세스 칩스의 청동상은, 지금도 뉴질랜드 웰링턴의 카이코우라이 묘지에 있습니다. 남극에서 살아남지 못했지만, 역사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남은 고양이 미세스 칩스.
다른 남극 탐험선의 고양이들
엔듀런스호의 미세스 칩스는 가장 유명하지만, 남극 탐험 역사에서 유일한 선상 고양이는 아니었습니다.
테라 노바(Terra Nova)호: 로버트 팰컨 스콧의 1910~1912년 남극 탐험선에도 고양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스콧의 탐험은 아문센에게 남극점 초정복을 빼앗기고, 귀환 중 스콧을 포함한 다섯 명의 대원이 모두 사망한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그 배에도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합니다.
시 (Southern Cross)호: 카스텐 보크그레빙크의 1898~1900년 탐험에도 선상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이 탐험은 남극 대륙에 최초로 월동한 탐험대가 된 것으로 기록됩니다. 그 역사적 월동 기간 동안 고양이도 함께 남극의 겨울을 버텼습니다.
극지 탐험의 역사는 인간 용기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물들과 함께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썰매견들의 역할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 위에서, 갑판 아래에서, 대원들의 무릎 위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킨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극한에서 고양이가 하는 일
이 이야기들을 통해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인간이 가장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 고양이는 이상하리만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극의 얼음 위에서도, 19세기 의회도서관의 밤에도,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전쟁 속에서도 고양이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인간에게 무언가를 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의 감각일 수도 있고, 생명이 있다는 사실의 확인일 수도 있고, 세상이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야옹대는 것은, 내일도 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희망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엔듀런스호의 대원들은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미세스 칩스를 잃은 후의 기록과 전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대원들의 일기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진다는 것을 연구자들은 지적합니다.
단지 고양이 이야기가 사라진 것만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고 부드러운 순간들에 대한 묘사가 줄어들었습니다. 고양이는 극한 속에서도 일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일상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미세스 칩스를 기억하며
1914년 12월, 엔듀런스호를 타고 남극으로 향했던 그 고양이는 남극 대륙을 밟지는 못했습니다. 섀클턴의 생존 전설이 펼쳐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얼음 위에서의 생활도, 800마일 항해도, 기적 같은 구조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세스 칩스는 그 탐험의 절반을 함께했습니다. 배가 얼음에 갇히기 전까지의 날들, 극야의 어둠 속에서 대원들의 무릎 위를 오가며 골골거리던 시간들, 그것이 미세스 칩스의 남극이었습니다.
그리고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뉴질랜드의 한 묘지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미세스 칩스가 여전히 해리 맥니시 옆에 앉아 있습니다. 남극의 얼음 속에서 사라진 배, 그 배에서 함께했던 두 존재의 우정이 청동 속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역사는 위대한 탐험가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의 이름도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