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15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3년 프랑스 우주 프로그램 | 펠리세트의 비행 | 라이카는 알지만 펠리세트는 모르는 이유
1963년 10월 18일 오전 8시 9분, 프랑스 사하라 사막 알제리 하마기르 발사 기지, 베로니크 AG1 로켓이 점화되었습니다.
로켓 안에는 우주복을 입은 인간이 없었습니다. 대신, 머리에 전극이 부착된 작은 검은색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특수 제작된 캡슐 안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체중 2.5kg. 이름은 펠리세트(Félicette)라는 고양이가 말이죠.
15분 후, 고도 157km. 우주의 경계로 알려진 카르만 라인(100km)을 훌쩍 넘어선 높이에서, 캡슐이 분리되었습니다. 낙하산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펠리세트는 살아서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이 날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고양이를 우주에 보냈고, 그 고양이는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주 경쟁의 시대 — 동물들이 먼저 갔다
1960년대 초반의 우주 경쟁을 이해하지 않으면, 펠리세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 패권을 다투던 시절, 인간을 우주에 보내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었습니다. 생명체가 우주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무중력이 생물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 대기권 밖의 방사선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발사와 재진입의 충격을 살아있는 몸이 견딜 수 있는가라는 질문말이죠.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인간보다 먼저 동물들이 갔습니다. 소련은 1957년 라이카(Laika)를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지구 궤도에 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라이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라이카가 일주일을 살다 안락사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발사 직후 열 조절 장치 고장으로 몇 시간 만에 열사병으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라이카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알려졌고, 그 비극적 최후 때문에 더욱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미국은 침팬지 햄(Ham)을 1961년 우주에 보냈습니다. 햄은 다행이도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고양이를 선택했습니다.
왜 고양이였는가 — 프랑스의 논리
미국은 영장류를, 소련은 개를 선택했습니다. 프랑스가 고양이를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신경학적 연구 목적: 프랑스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는 무중력 상태가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과학자들은 고양이의 신경계가 이 연구에 특히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양이는 균형 감각이 매우 발달해 있고, 전정기관(vestibular system)이 복잡하게 발달해 있어 무중력 환경에서 신경계 반응을 측정하기에 이상적인 피험체였습니다.
둘째, 체구와 관리 용이성: 고양이는 침팬지보다 훨씬 작아 소형 캡슐에 탑재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또한 개보다 훈련 과정이 특수했지만, 스트레스 반응 면에서 연구 가치가 있었습니다.
셋째, 단순한 역사적 우연: 프랑스가 당시 보유한 기술과 예산의 제약 속에서, 궤도 비행이 아닌 준궤도 비행으로 연구 목적을 달성하려 했고, 이 목적에 고양이가 적합했습니다.
14마리에서 1마리로 — 펠리세트가 선택된 이유
펠리세트는 처음부터 우주 고양이 후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와 프랑스 항공의학연구소는 파리 길거리에서 약 60마리의 고양이를 모았습니다. 그 중에서 건강 상태, 체중, 기질 등을 기준으로 최종 14마리를 선발했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14마리의 고양이는 약 2년에 걸친 훈련 프로그램을 거쳤습니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발사 시 받는 가속도를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압력 챔버에서 기압 변화에 적응했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공간에서 지내는 훈련을 통해 좁은 캡슐에 익숙해졌습니다. 소음과 진동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고양이의 뇌파와 신체 반응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되었습니다. 14마리 중 6마리가 최종 후보로 좁혀졌고, 그 중 가장 침착하고 스트레스 반응이 안정적인 고양이가 선택되었습니다. 바로 펠리세트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원래 첫 번째 비행에 선정된 고양이는 펠릭스(Félix)라는 수컷 고양이였다고 일부 기록에서 말합니다. 그런데 비행 직전 펠릭스가 탈출했고, 급하게 펠리세트가 대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식 기록에는 펠리세트가 처음부터 선정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버전이 사실이든, 결국 우주로 간 것은 펠리세트였습니다.
1963년 10월 18일 — 15분의 우주 여행
발사 당일 아침, 펠리세트는 특수 제작된 슈트에 고정되었습니다. 머리에는 뇌파를 측정하는 전극이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캡슐 안의 온도와 압력은 지구 환경과 동일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오전 8시 9분, 베로니크 AG1 로켓이 점화되었습니다. 발사 후 약 1분 만에 로켓은 최고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펠리세트가 느낀 G력은 9.5G. 체중의 9.5배에 달하는 힘이 몸을 짓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 전투기 조종사가 훈련을 통해 버틸 수 있는 최대치가 대략 9G 수준입니다.
발사 약 5분 후, 로켓이 연소를 마치고 캡슐이 분리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약 5분간, 펠리세트는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지구로부터 157km 고도. 카르만 라인에서 57km 더 위. 거기서 펠리세트의 뇌파는 지속적으로 측정되었고, 그 데이터가 지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고양이의 신경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펠리세트의 뇌파는 발사 초기의 흥분 상태를 보인 후, 무중력 구간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패닉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우주 환경에서도 고양이의 신경계가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을 보여준 데이터였습니다.
약 15분 후, 낙하산이 펼쳐졌습니다. 캡슐이 천천히 사하라 사막으로 내려왔습니다. 회수팀이 착지 지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와우! 펠리세트는 살아있었습니다.
영웅 귀환 — 그런데 왜 아무도 모르는가?
소련의 라이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미국의 침팬지 햄도 역사책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살아서 우주를 다녀온 최초의 고양이 펠리세트는 왜 잊혀졌을까요? 그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첫째, 언론 보도의 불균형: 라이카가 비행한 1957년은 우주 경쟁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고, 전 세계가 우주 뉴스에 열광하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1963년은 이미 유인 우주 비행이 이루어진 이후였습니다. 가가린이 1961년에 이미 우주를 다녀왔습니다. 고양이 비행은 상대적으로 작은 뉴스였습니다.
둘째, 프랑스의 독립적 우주 프로그램: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에 집중된 국제적 관심 속에서, 프랑스의 독자적 우주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습니다.
셋째, 이름의 혼란: 비행 직후 일부 언론은 이 고양이를 펠릭스라고 잘못 보도했습니다. 실제 이름인 펠리세트는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넷째, 비극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펠리세트가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에 덜 기억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라이카의 이야기는 비극적 죽음 때문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결말은 기억에 덜 박힙니다.
두 번째 비행과 펠리세트의 마지막
펠리세트의 이야기에는 덜 알려진 후속 장면이 있습니다. 1963년 10월 24일, 단 6일 후, 두 번째 고양이가 우주에 보내졌습니다. 이 두 번째 고양이의 이름은 기록에 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비행은 기술적 문제로 낙하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안타깝게도 고양이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펠리세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행 후 펠리세트는 과학 연구를 위해 계속 관찰되었습니다. 뇌에 삽입된 전극을 통한 신경학적 연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안타깝게도, 비행 약 2개월 후인 1963년 12월, 펠리세트는 연구 목적으로 안락사되었습니다. 뇌 조직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주를 다녀온 최초의 고양이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졌습니다.
50년 후의 정의 — 펠리세트를 기억하는 사람들
펠리세트가 역사적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2017년,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매트 서브랜드(Matt Surber)는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펠리세트의 동상을 만들어 파리나 다른 적절한 장소에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캠페인은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하며 성공했습니다.
2019년, 국제우주대학교(International Space University)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펠리세트의 청동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동상 속 펠리세트는 로켓 위에 앉아 별을 향해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화성의 분화구 하나가 펠리세트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국제천문연맹이 공식적으로 화성 표면의 지형에 펠리세트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라이카는 달에 이름 붙은 분화구가 있고, 소련 우표에 등장했으며, 수많은 책과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펠리세트는 56년이 지나서야 동상과 화성의 분화구 이름을 얻었습니다. 펠리세트는 좀 늦었지만, 기억은 시작되었습니다.
고양이가 우주에 간다는 것의 의미
펠리세트의 이야기에서 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필자의 고양이 이야기 연재를 통해 우리는 고양이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해왔는지를 보았습니다. 이집트 문명의 중심에, 오스만 제국의 궁전에,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에, 남극 탐험선의 갑판에, 미국 연방 정부의 급여 명부에, 그리고 1963년에는 우주에 말이죠.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 대기권 밖을 탐험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도, 고양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고양이가 신경학 연구에 적합해서 선택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인류가 우주를 향해 손을 뻗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고양이가 새겨졌습니다.
157km 상공에서 펠리세트가 무중력 상태로 떠 있던 5분 동안, 그 작은 고양이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요. 창이 있었다면, 파란 지구가 보였을 것입니다. 검은 우주가 보였을 것입니다. 별이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그 고양이의 눈앞에 있었을 것입니다.
화성의 펠리세트
실제로 화성 표면 어딘가에 펠리세트라는 이름을 가진 분화구가 있습니다. 탐사선이 찍은 사진 속에서, 붉은 먼지로 덮인 그 분화구는 1963년 사하라 사막에서 우주로 올라간 2.5kg짜리 얼룩 고양이의 이름을 품고 있습니다. 56년 동안 잊혀졌다가, 마침내 화성에 이름을 얻은 고양이 펠리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