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15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철학적 고양이 | 체셔 고양이의 기원 | 영국 문화와 고양이
체셔 고양이는 사라지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꼬리가 사라집니다. 그다음 몸통이. 그다음 다리가. 얼굴이 사라지고, 귀가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웃음은 남습니다. 몸도 없고, 얼굴도 없고, 눈도 없는데, 어둠 속에서 웃음만 허공에 떠 있습니다. 앨리스가 고개를 젓습니다.
“웃음 없는 고양이는 본 적이 있지만, 고양이 없는 웃음은 처음 봐. 정말 가장 이상한 것 중에 하나야.”
1865년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는 이렇게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60년이 지난 지금, 이 고양이는 여전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웃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고양이는 왜 웃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여전히 그 웃음을 이해하려 할까요?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와 소녀 — 창조의 순간
체셔 고양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을 만든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필명입니다. 본명은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 줄여서 찰스 도지슨, 그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수학 강사였습니다. 논리학과 수학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고, 수학 퍼즐을 만드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 학장 헨리 리델(Henry Liddell)의 세 딸들이었습니다. 1862년 7월 4일, 찰스 도지슨은 헨리 리델의 세 딸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테임즈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풍을 갔습니다. 그 강 위에서, 그는 이야기를 즉흥으로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세 딸들 중 가운데인 앨리스 리델(Alice Liddell)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앨리스는 열 살이었습니다. 앨리스는 그 이야기를 계속 읽을 수 있게 책으로 써달라고 졸랐습니다. 도지슨은 처음에는 손으로 쓴 원고를 선물했다가, 나중에 정식으로 출판했습니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말이죠. 그 책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체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체셔 고양이의 첫 번째 수수께끼 — 왜 체셔인가
"체셔 고양이처럼 웃는다(Grinning like a Cheshire cat)"는 표현은 캐럴이 만들기 전부터 영국에서 사용되던 관용구였습니다. 그런데 왜 체셔일까요?
체셔(Cheshire)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주(county)입니다. 루이스 캐럴, 즉 찰스 도지슨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1832년 그는 체셔의 데어즈베리(Daresbur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체셔에서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체셔 고양이가 항상 웃는다는 이미지가 생겼을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 - 치즈: 체셔는 체셔 치즈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이 치즈가 한때 웃는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만들어져 팔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치즈 고양이가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셔 고양이처럼 웃는다"는 표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설은 매력적이지만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두 번째 설 - 사자 문장: 체셔 주의 여관과 술집들이 사자 문장(coat of arms)을 사용했는데, 이 사자가 간판에 그려질 때 어설프게 그려져 웃는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처럼 보였다는 설입니다.
세 번째 설 - 지역 고양이: 체셔 지방의 고양이들이 특별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민간 전승도 있습니다.
어떤 설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체셔 고양이처럼 웃는다"는 표현이 캐럴 이전에도 있었고, 캐럴이 그것을 자신의 어린 시절 고향과 연결하여 문학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캐럴은 그 표현을 단순한 관용구에서, 철학적 의미를 가진 캐릭터로 변환시켰습니다.
소설 속 체셔 고양이 — 무엇을 말하는 고양이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는 공작부인의 집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후 여러 번 앨리스 앞에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체셔 고양이는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만나는 많은 이상한 존재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앨리스를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무시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그런데 체셔 고양이는 앨리스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고, 정보를 주고, 안내를 합니다. 가장 유명한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앨리스: “어느 길로 가야 해요?”
체셔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에 가고 싶으냐에 달려 있어."
앨리스: "어디든 상관없어요."
체셔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어."
이 짧은 대화가 담고 있는 논리는 완벽합니다. 목적지가 없다면 방향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수학자 도지슨이 만든 고양이답습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하면서도, 그 논리가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대화죠. 그리고 체셔 고양이는 이 말도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어. 나도 미쳤고, 너도 미쳤어." 앨리스가 어떻게 아냐고 묻자, 고양이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정상인 존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아."
왜 고양이는 웃는가 — 세 가지 해석
체셔 고양이의 웃음은 문학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분석한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의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해석 - 풍자와 아이러니: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대한 풍자로 보는 시각입니다.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는 모든 것이 규칙과 형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는 점잖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체셔 고양이의 웃음은 이 이중성의 상징입니다. 몸은 사라져도 웃음만 남는다는 것은, 껍데기(외면)는 없어져도 겉으로 보이는 표정(사회적 가면)만 남는 빅토리아 사회의 위선을 꼬집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 해석 - 허무주의와 철학: 체셔 고양이의 웃음을 실존주의적으로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서도 웃음만 남는다는 것은, 세계가 의미를 잃어도 어떤 태도(웃음)는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해석에서 체셔 고양이는 일종의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세상의 불합리함 앞에서, 카오스와 혼돈 앞에서, 그것에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저 웃습니다. 웃음이 저항의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해석 - 수학자의 농담: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도지슨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수학적 추상화에 대한 농담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는 구체적인 대상 없이 추상적 개념만 남길 수 있습니다. 고양이라는 구체적 존재에서 웃음이라는 추상적 개념만 추출하는 것은, 수학적 추상화 과정의 유머러스한 버전입니다. 고양이 없는 웃음. 수식 없는 개념. 어쩌면 같은 것입니다.
테니얼의 삽화 — 시각 이미지의 탄생
체셔 고양이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미지로 만든 것은 루이스 캐럴만이 아닙니다. 원작 삽화를 그린 존 테니얼(John Tenniel)의 공이 절대적입니다. 테니얼은 당시 영국의 가장 유명한 풍자 잡지 《펀치(Punch)》의 수석 삽화가였습니다. 캐럴이 그에게 삽화를 의뢰했고, 테니얼은 거의 주저 없이 수락했습니다.
테니얼이 그린 체셔 고양이는 줄무늬 고양이입니다. 위협적이거나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안하고 약간 뚱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이상합니다. 너무 큽니다. 너무 지속됩니다. 어딘가 인간의 웃음 같습니다.
테니얼의 삽화에서 체셔 고양이는 이 이야기의 대표 이미지처럼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습니다. 비스듬히, 편안하게, 마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 위치가 상징적입니다. 고양이는 위에서 바라봅니다. 앨리스가 올려다봐야 합니다. 지식과 권위의 위치 관계가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테니얼의 이 이미지는 이후 수백 가지 버전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 모든 버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웃음입니다.
캐럴과 도지슨 — 작가 자신도 사라졌다
흥미로운 것은 루이스 캐럴이라는 인물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체셔 고양이와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찰스 도지슨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루이스 캐럴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루이스 캐럴임을 사람들에게 밝히기를 거부했습니다. 두 개의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수학 강사 찰스 도지슨과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은 같은 사람이었지만, 도지슨은 루이스 캐럴이 되는 순간 자신을 지웠습니다. 작가는 사라지고 작품만 남았습니다. 마치 체셔 고양이처럼, 몸은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은 것처럼 말이죠.
또한 도지슨은 말을 더듬는 심한 언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더듬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어른의 세계에서는 말이 막혔지만, 이상한 나라에서는 자유로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쩌면 도지슨 자신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후의 체셔 고양이들 — 문화 속의 증식
체셔 고양이는 원작 이후 160년간 수없이 재해석되었습니다.
디즈니(1951년): 디즈니의 체셔 고양이는 원작과 가장 다른 해석입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줄무늬 고양이로, 원작보다 훨씬 사악하고 교활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디즈니 버전의 체셔 고양이는 앨리스를 돕기보다 혼란에 빠뜨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해석이 이후 많은 사람들의 체셔 고양이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팀 버튼(2010년): 필자도 본 영화로,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체셔 고양이는 더욱 신비롭고 고요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목소리는 스티븐 프라이가 맡았는데, 그의 부드럽고 지적인 목소리가 체셔 고양이의 캐릭터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공작부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메리칸 맥기(2000년): 비디오 게임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American McGee's Alice)에서 체셔 고양이는 해골처럼 야위고 어두운 존재로 표현되었습니다. 이상한 나라가 앨리스의 무너진 정신을 상징하는 이 게임에서, 체셔 고양이는 유일하게 앨리스의 진정한 편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필자도 직접 플레이해본 게임으로, 판타지 게임 장르라기보다 거의 호로 장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다양한 해석들이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체셔 고양이는 고정된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각 시대, 각 예술가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그 웃음 속에서 찾아냅니다. 그것이 이 캐릭터의 힘입니다.
체셔 고양이와 양자역학 — 예상치 못한 연결
앞에서 필자는 이미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관찰 전까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고양이 말이죠. 흥미롭게도, 물리학자들 중 일부는 체셔 고양이와 양자역학 사이에 흥미로운 연결을 발견했습니다.
2013년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야키르 아하로노프(Yakir Aharonov)와 동료들은 "체셔 고양이 효과(Cheshire Cat effect)"라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기술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현상은 입자의 물리적 성질(스핀 등)이 입자 자체가 있는 위치와 다른 장소에서 검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입자는 한 곳에 있는데, 그 입자의 성질은 다른 곳에서 감지된다. 몸은 없는데 웃음은 남는 것처럼 말이죠. 소설 속 이미지가 160년 후 물리학의 개념적 도구가 된 것입니다.
체셔 고양이가 실제로 존재했을까 — 그리말킨 설
루이스 캐럴이 체셔 고양이의 영감을 받은 실제 고양이가 있었다는 설들이 있습니다. 가장 구체적인 설은 그리말킨(Grimalkin)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입니다. 영국 민간 전승에서 그리말킨은 회색의 늙은 고양이, 혹은 마녀의 고양이를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도 그리말킨이 등장합니다. 《맥베스》 1막 1장에 등장하는 마녀들의 사역마이자 고양이로 말이죠.
또한 체셔 지방에는 교회 건물 등에 새겨진 웃는 고양이 석상들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오버 교회(Over Church)와 크로프턴 교회(Crofton Church)에 웃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조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 체셔에서 자란 도지슨이 이런 조각들을 보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캐럴 자신은 체셔 고양이의 영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의도적이었을 것입니다. 웃음은 남기고 설명은 사라지게 하는, 체셔 고양이 자신의 방식처럼 말이죠.
웃음만 남는다는 것의 의미
마지막으로, 이 이미지가 왜 160년간 살아남았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고양이 없는 웃음. 이것이 왜 그토록 강력한 이미지인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떤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감정이나 분위기나 느낌이 그것을 만든 구체적인 원인 없이 남아 있는 경험. 왜 웃음이 나는지 설명할 수 없는데 웃음이 나는 순간. 왜 불안한지 모르는데 불안한 순간. 이유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 것처럼 말이죠.
체셔 고양이의 웃음은 설명 불가능한 감정 상태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상태를 매우 자주 경험합니다. 또한 이 이미지는 실재와 부재의 경계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웃음은 남아 있지만 웃는 주체는 없습니다. 의미는 있지만 의미의 근원은 없습니다. 이것은 철학에서, 언어학에서, 심리학에서 계속 다뤄지는 질문입니다. 기호는 있는데 의미는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수학은 어떤 의미에서 체셔 고양이와 닮아 있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디에 있습니까? 3개의 사과는 있습니다. 그런데 3 자체는 어디에 있나요? 고양이 없는 웃음처럼, 구체적 사물 없는 추상적 개념을 말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수학자 도지슨이 체셔 고양이를 만든 이유였는지도 모릅니다.
웃음은 남는다
앨리스는 결국 이상한 나라에서 돌아옵니다. 꿈이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웃음은 남습니다. 160년 후에도 말이죠. 이 이야기를 읽고 책을 덮어도, 체셔 고양이의 웃음에 대한 기억은 남습니다. 고양이는 사라졌지만 웃음은 어딘가에 떠 있습니다. 마치 이 고양이 이야기 시리즈 전체가 그러한 것처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나서, 고양이가 당신의 곁에 없어도 고양이에 대한 어떤 감각이 남는 것처럼 말이죠.
“고양이의 웃음은 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