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15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 상징 | 작품별 고양이 분석 | 현대 문학과 고양이 철학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대부분 혼자입니다. 재즈가 흐릅니다. 위스키나 맥주가 등장합니다. 파스타를 만듭니다. 여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는 배경의 일부가 아닙니다. 주목해야 할 무언가입니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템포가 바뀌거나, 분위기가 전환되거나, 주인공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키 소설의 수십 마리 고양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하나의 일관된 철학이 보입니다. 고양이는 그에게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었을까요.
하루키 자신의 고양이들
소설을 열기 전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제로 고양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것은 그의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그의 에세이집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먼 북소리》, 《람프》 등에는 자신의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고, 각 고양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키의 고양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고양이를 이상화하거나 감상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를 담담하게 관찰합니다. 마치 고양이를 연구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관찰이 소설 속으로 들어옵니다.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양이는 인간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줍니다. 말로 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 이 문장이 그의 소설 속 고양이들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첫 번째 고양이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Hear the Wind Sing, 1979)》에는 고양이가 직접적으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미 하루키 특유의 고양이 감각이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인물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상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고양이는 나중의 소설들에서 이 상실감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데뷔작은 그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가 등장할 때, 주인공은 거의 언제나 어떤 의미에서 혼자입니다. 고독이 아니라 고립.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않은 느낌.
고양이는 그 상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입니다. 고양이도 항상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노르웨이의 숲》 — 고양이가 없는 소설의 고양이 감각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출간된 하루키의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인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1987)》에는 흥미롭게도 고양이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 전체에 고양이 같은 감각이 흐릅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나오코는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습니다. 미도리는 직접적이지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두 여성 모두 어떤 의미에서 고양이적입니다. 접근했다 멀어지고, 친밀했다가 갑자기 차가워지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특히 미도리가 더 고양이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의 기능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 소설 전후입니다. 고양이는 연결되지 않음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연결에 대한 갈망의 대상입니다. 고양이는 당신 옆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거기 있기를 선택한 것이지, 당신이 거기 있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구분이 하루키에게 중요합니다.
《해변의 카프카》 — 나카타의 고양이들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가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해변의 카프카(Kafka on the Shore, 2002)》입니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나카타는 노인입니다. 어린 시절의 기이한 사건 이후 글을 읽지 못하게 되었고, 기억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카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카타는 도쿄 스기나미구에서 길 잃은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을 합니다. 고양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고양이들과 직접 대화합니다. 고양이들은 나카타에게 다른 고양이들의 행방을 알려주고,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고양이 대화 장면들은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상한 부분입니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수다스러운 고양이, 철학적인 고양이, 무관심한 고양이. 그들과 나카타의 대화는 인간들의 대화보다 더 솔직하고, 더 핵심적입니다.
왜 나카타만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을까요? 하루키는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암시는 있습니다. 나카타는 어린 시절 사건으로 인해 "이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이쪽에도 완전히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 말이죠.
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양이는 항상 경계에 있습니다. 인간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인간 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 때문에 나카타와 고양이는 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고양이는 경계를 아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경계를 아는 존재만이 다른 경계의 존재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조니 워커 — 고양이의 영혼을 모으는 자
《해변의 카프카》에는 악당이 있습니다. 조니 워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한 남자. 그는 고양이들을 잡아 살해하고, 그들의 영혼을 모아 특별한 피리를 만들려 합니다. 고양이의 영혼으로 만든 피리. 그 피리 소리는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설정은 표면적으로 환상적이지만, 하루키의 고양이 철학과 연결됩니다. 고양이는 경계의 존재입니다. 경계에 있는 존재는 세계와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힘을 가집니다. 그 힘을 강제로 추출하면 위험한 무기가 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과 고양이를 이용하는 것의 차이. 나카타는 고양이와 대화하고 고양이를 찾아주지만, 조니 워커는 고양이를 죽이고 그 영혼을 착취합니다. 하루키는 이 구도를 통해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과 다른 존재를 이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1Q84》 — 고양이처럼 존재하는 캐릭터
《1Q84(2009~2010)》에서 고양이는 직접적으로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 등장인물 중 하나인 후카에리는 어떤 의미에서 고양이와 닮아 있습니다.
후카에리는 젊은 여성인데, 그녀의 행동과 말은 항상 예측을 벗어납니다. 직접적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감정 표현이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가까이 있지만 접근할 수 없는 느낌을 줍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이렇게 고양이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인물들이 반복됩니다. 그들은 규칙적인 인간 사회의 논리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고양이처럼, 자신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달이 두 개인 세계, 즉 1Q84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경계에 있는 공간입니다. 고양이가 항상 경계에 있는 존재라면, 1Q84 자체가 고양이적인 공간입니다. 두 세계에 동시에 있는 것.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가 상징하는 것의 핵심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 고양이와 사라짐
《기사단장 죽이기(Killing Commendatore, 2017)》에서 고양이는 사라짐과 연결됩니다. 주인공의 삶에서 여러 것들이 사라집니다. 아내가 떠나고, 자신도 집을 나와 낯선 산 속 집에서 생활합니다. 그 집에 고양이가 드나듭니다. 주인 없는 고양이, 혹은 주인이 있지만 여기저기 다니는 고양이 말이죠.
이 고양이는 주인공의 상실감과 연결됩니다. 고양이는 있다가 없어집니다.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납니다. 왔다가 갑니다. 이 리듬이 주인공이 경험하는 상실과 회복의 리듬과 맞아떨어집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가 가진 세 번째 기능이 이것입니다. 사라짐의 상징. 체셔 고양이처럼, 고양이는 갑자기 나타나고 예고 없이 사라집니다. 하루키 소설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상실 - 사람의 죽음, 관계의 끝, 기억의 소멸은 모두 이 고양이적 사라짐과 연결됩니다.
단편 소설들의 고양이 — 더 직접적인 고백
하루키의 단편 소설들에는 고양이가 더 직접적으로 등장합니다. 《고양이를 버리다》 — 이것은 단편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2019년 발표된 이 작품에서 하루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경험을 씁니다. 고양이를 버렸는데 고양이가 먼저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에세이에서 고양이는 돌아오는 것의 상징입니다. 버려도, 사라져도, 고양이는 돌아옵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변형된 형태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죠.
하루키의 단편 《TV 피플》에서, 단편 《잠(Sleep)》에서, 그리고 여러 단편들에서 고양이는 주인공의 내면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로 기능합니다. 고양이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면, 주인공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루키 고양이의 철학 — 다섯 가지 기능
하루키 소설 전체를 통해 고양이가 하는 역할을 정리하면 다섯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 경계의 표시. 고양이가 등장할 때, 주인공은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경계에 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의 경계. 고양이는 그 경계에 있다는 신호입니다.
두 번째: 고독의 동반자.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근본적으로 혼자입니다. 고양이는 그 고독을 이해합니다. 고독을 없애려 하지 않고, 고독 곁에 그냥 앉아 있습니다. 그것이 고양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위안입니다.
세 번째: 사라짐의 전조.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행방이 묘연해지면, 그 다음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집니다. 고양이의 사라짐은 더 큰 상실의 예고입니다.
네 번째: 타자성(他者性)의 구현. 고양이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양이는 이 이해 불가능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다섯 번째: 현재의 닻. 과거와 기억과 상실로 가득한 하루키 소설에서, 고양이는 현재 이 순간에 있습니다. 고양이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밥 시간에는 밥을 먹고, 졸릴 때는 자고, 놀고 싶을 때 놉니다. 이 단순한 현재성이 하루키 소설의 복잡한 인물들에게 어떤 안정감을 줍니다.
재즈, 파스타, 고양이 — 하루키 소설의 삼위일체
하루키 소설에는 반복되는 모티프들이 있습니다. 재즈, 위스키, 파스타, 런닝, 그리고 고양이. 이것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재즈는 혼자 들을 수 있고, 위스키는 혼자 마실 수 있고, 파스타는 혼자 만들 수 있고, 런닝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모티프들은 하루키 소설의 중심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고독하지만 편안한 것. 혼자이지만 충만한 것. 연결을 원하지만 연결에 의존하지 않는 것. 고양이는 이 감각의 가장 완벽한 구현입니다.
하루키가 말하지 않은 것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터뷰에서 소설의 의미를 해석해달라는 요청에는 대개 회피합니다. 고양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양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맞습니다. 하루키 소설의 고양이가 힘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고양이이기 때문입니다.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를 설명하려는 순간 고양이는 사라집니다. 체셔 고양이처럼, 웃음만 남기고 말이죠.
고양이들
이 고양이 이야기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수 많은 고양이들을 만났습니다. 이집트의 신성한 고양이, 켈트의 영혼 도둑, 일본의 요괴, 프랑스의 우주 비행사, 남극 탐험선의 대원,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 있는 고양이, 체셔 고양이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 속 고양이들을 말이죠.
이 모든 고양이들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양이는 항상 경계에 있습니다. 완전히 이 세계에도 완전히 저 세계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완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습니다.
하루키 소설의 고양이들은 이것을 문학적 언어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어도, 고양이의 감각은 남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독, 이해되지 않는 연결, 사라져도 남는 무언가 말이죠.
그것이 고양이가 하는 일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